흐린 날씨,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오히려 말을 걸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 아침에 한 명의 여자아이를 만난 후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직업 특성상 책보다는 매장 안의 여자들을 더 눈여겨보게 된다. 돌아다니며 흥미로운 책을 찾고 있는데, 회계학 교재를 살펴보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어린 나이에 모델처럼 날씬한 체형에 호텔 리셉션 같을 정도로 단정하고 진지한 인상이었다. 이상하게도 학술 코너와 아주 잘 어울렸다. 원하는 책을 고른 듯 계산대를 향해 걸어가기에, 이 시간에 두꺼운 교재를 사는 걸 보면 아마도 별다른 계획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매장 밖에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평소처럼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녀에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부드럽게 인사한 후 수백 번 반복한 기본 대사를 이용해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이름은 치하루, 21세,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직설적인 말투에 차분함을 넘어서 상쾌할 정도로 솔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놀랍게도 취미는 클럽 나들이였다. 처음엔 친구들과 함께 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람도 늘고 이제는 혼자 자주 나간다고 한다. 한낮에 공부할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보고선 온천 방문 같은 조용한 취미를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의외였다. 장소를 옮겨 잠시 함께 어울린 후, 내 직업을 밝히며 분위기를 시험해보고 대화를 더 확장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