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오후, 습한 포장도로 위로 달팽이들이 기어 나왔다. 로퍼를 신은 여고생 무리가 지나가다 우연히 그 위를 밟아, 발아래 생물을 으깨버렸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달팽이들이 유난히 커 보였고, 발바닥에 전해지는 찐득한 감촉과 저항감은 묘한 쾌감을 안겼다. 소녀들은 갑자기 깨닫고 놀란 듯 외쳤다. "나 달팽이 밟았어!" "에이, 역겨워! 대체 뭐야, 이거?!" 웃음을 터뜨리며, 신발 밑창에서 작고 축축한 ‘팍’ 소리가 나올 때마다 작고도 소중한 생명이 꺼지는 순간을 즐겼다. 동정심 대신 기쁨을 느끼는 이 소녀들. 일상 속 여고생들의 다정다감한 잔혹함 속에 숨은 변태적인 순간이 생생한 리얼리즘으로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