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돌아갈 집도 없다. 이 작은 골판지로 만든 피난처가 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삶은 점점 외로워졌고, 나는 점점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나타났다. 매일매일 이 골판지 집 앞을 지나가며 등교하는 듯한 그녀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 나를 무시하지 않고, 동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존재를 의도적으로 인식하는 그 태도는 용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로 하여금 내 존재를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벌이 필요하다. 그녀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게, 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하기 위해. 천천히, 체계적으로, 내가 여기 있었음을 그녀가 잊도록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