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자증 판정을 받은 지 1년. 남편은 끊임없이 절망에 시달려왔다. 결혼한 지 3년, 아내는 이제 출산하기 가장 적절한 나이에 도달했다. 그는 늘 "미안해, 다 내 탓이야"라며 자책했지만, 아내는 항상 부드럽게 위로했다.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서로 치유해 나가자." 어느 봄날, 그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한 장의 문서를 건넸다. 그것은 '라이프 재단'이라는 이름의 기관에서 나온 브로셔였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승인을 받지 못한, 무허가의 의심스러운 정자은행이었다.